'목록하단 광고 치환자(with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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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학교 3학년 때
불교학생회에 나가면서 불교를 알게 된 그는
고교 1학년 때 분황사의 도문 스님을 만나게 됐다.

그해 겨울 학기말 시험을 앞두고
법당을 나서는 그를 도문 스님이 붙잡았다.

당시 시험기간이었던 법륜은 바쁘다고 말했고,
도문은 대뜸 "넌 어디서 왔냐?" 하고 물었다.

"학교요."
"그 전에는?"
"집에서요."
"그 전에는?"

과거를 되짚는 질문이 이어지다가
결국 '어머니 뱃속'까지 갔다.

"어머니 뱃속 전에는 어디서 왔나?"
하는 물음에 대답을 못하자, 질문은 미래를 향했다.

"어디로 갈거냐?”
"학교요"
"그 다음은?"
"집이요."

미래에 대한 질문 또한 끝까지 이어지다가
결국 "죽겠죠."라는 대답까지 이르자 도문은
"그럼, 죽으면 어디로 가는데?"라고 물었으나
법륜은 역시 대답을 못했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놈이
바쁘기는 왜 바빠!"라는 말을 들은 것으로
절에 들어갔다.



#2
1991년
도문 스님은 법륜 스님에게 출가를 권유한다.
“도에 안팎이 어디 있습니까”는 대꾸에
도문 스님은
“밖을 고집하니 안이 생기지 않느냐”고 꾸짖었다.
당장 그날 삭발했지만 조계종 승적은 지금도 없다.


#3
30대 초반 포교 활동을 하면서
스스로의 말과 행동이
다름을 인지하는 사건을 겪고
충격을 받았다.

불교 정화운동에 참여하며
한국 불교계의 실상을 깊이 들여다 보면서
불교 자체에 회의를 느꼈다.
불교를 버릴 생각까지 하며
미국으로 떠났다가 서암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미국의 한 작은 사찰에서
우연히 누군지도 모르는
노승(서암)을 만난 자리에서
한국 불교에 대한 불평을
여러 시간 동안 늘어 놓았다.

서암은 묵묵히 듣다가
"여보게,
어떤 사람이 논두렁에 앉아
그 마음을 청정히 하면
그 사람이 중이고
그 논두렁이 절이라네.
그것이 불교야"
말하였다.

법륜에게 이 말이
다시 한번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머리 깎고 승복 입고 산속에 있어야
스님이고, 절이고, 불교라는 고정관념이 깨졌다.
기성 종단을 비판하기보다 새로운 모델을 만들자는 결심이 섰다.

#4
귀국 후에도 서암과의 인연은 이어져,
1986년 비원포교원을 개원하였을 때
서암이 3일간 법문을 해주었다.
비원포교원의 크기가 20평으로
불상을 놓을 만한 공간이 없어서 고민하던 때,
법륜은 서암에게
불상을 놓는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서암이
"산 부처 앉을 자리도 없는데,
죽은 부처 두어서 뭐하게?"라고 말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법륜은
불상 대신 부처님 사진을 걸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현재 정토회에도 이어져,
공간이 좁은 법당이라면 불상 대신 사진을 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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